신도비 세부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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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22-12-17 14:18 조회234회 댓글0건본문
신도비 세부 명칭
신도비의 경우 일반적으로 당대의 문장가, 즉 홍문관 대제학에게 청하는 것이 상례이다.
묘갈명은 대체로 3품직 이하의 관료를 지낸 양반층에게 사용되는 것이고, 그 이상의 품계를 지낸 이에 대해서만 신도비가 허용된다.
신도비나 묘갈은 찬문(撰文), 사자(寫字), 전액(篆額)을 위해 세 전문가(문장가와 서법가)의 손을 빌려야 한다. 이 때 청탁자에게 보내는 예물을 윤필(潤筆)이라고 한다.
비문을 청탁하고 나면 바로 돌을 사서(買石), 갈아(磨石), 바탕비(白碑)를 만들어 둔다. 그래야만 돌에 맞게 비문을 새겨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문이 마련되면 석공으로 하여금 문자를 새겨 넣고(入石), 길일을 택하여 묘 앞에는 갈석(碣石)을 세우고 묘도 동남방에는 신도비(神道碑)를 세운다(立石).
1) 이수 [螭首]
요약
용의 형체를 새겨 장식한 비석의 머릿돌.
본문
이(螭)자는 본래 뿔이 없는 용 또는 교룡(蛟龍)을 가리키는 글자이다. 그 용어와 양식은 중국에서부터 사용한 것으로, 본래는 이기(彛器)·비액(碑額)·석주(石柱)·석계(石階)·인장(印章)·종(鐘)·정(鼎) 등의 표면과 머리 부분에 용의 형체를 조각하여 장식한 것을 말한다. 이 가운데 비액의 이수가 형체나 크기로 보아 가장 대표적인 것이어서 오늘날의 일반적인 개념이 되었다.
비의 기원은 주대(周代)부터 유래한 목비(木碑)에서 찾는데, 이때는 단조로운 형태의 비신(碑身)뿐이었으며, 이수가 나타나는 것은 한대(漢代)부터이다. 한대의 비의 머리는 원형머리와 규형(圭形)으로 된 두 가지 양식이 있었는데, 특히 둥근 머리를 가진 비에서는 훈(暈)이라고 하는 것이 가장자리를 장식하는데, 이 훈에 가끔 용이나 주작(朱雀) 등을 조식하였던 것이 후세 이수의 기원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삼국시대와 남북조시대, 수대(隋代)를 거치면서 석비양식이 더욱 발전하고, 당나라 때에 와서 지금의 이수와 비신, 방부(方趺)·귀부(龜趺)를 가진 석비양식과 수법의 기본형이 등장하고, 이것이 한국에 전해져 고려시대까지 한국 석비의 기본양식이 되기도 하였다. 당나라 때에 완성된 이수의 특색은 둥근 머리의 형태에 좌우 2∼3마리의 반룡(蟠龍)들이 서로 얽힌 모습으로 나타나면서, 반룡의 머리만을 나란히 하여 석비를 물고 비신을 일제히 들어 올리는 듯한 형상으로 조각되어 있는 점이다. 이러한 당대(唐代) 석비의 양식이 통일신라시대에 수용되어 한국의 석비에서도 귀부와 이수가 갖춰지게 되었다. 통일신라시대 초기에는 당비의 이수의 특징을 그대로 갖추고 있으나, 9세기 후반기에 가면 둥근 머리형에서 관형(冠形) 또는 개형(蓋形)으로 변화되어 간다.
고려 초기까지 이러한 형식이 이어지다가 12세기 말에는 이수 없는 비신 위에 우진각 지붕형으로 된 규두형(圭頭形) 석비가 나타나고, 14세기 말에는 옥개풍(屋蓋風)의 지붕형 이수를 가진 또 다른 형식이 출현한다. 그러다 조선 초기에는 다시 당송시대의 이수를 가진 석비양식이 보이기도 하다가 15세기 말경부터는 고려 말의 옥개형 석비형식을 기본으로 하는 간략한 양식이 주조를 이룬다.
2) 귀부 [龜趺]
요약
거북 모양의 비석 받침돌.
본문
삼국시대부터 쓰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귀부 위에 비신을 세우고 비신 위에 두 마리 용으로 장식된 이수(螭首)를 씌우는 것이 보통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용의 모습 외에 해태 모습을 한 것도 있고, 사실적인 거북 모양에서 점차 변형되어 장중한 것, 패기에 넘치는 것, 우아한 것 등 형태를 달리한 것이 많다. 태종무열왕릉비(太宗武烈王陵碑)의 귀부와 이수는 완벽한 아름다움으로 높이 평가된다.
3) 여의보주 [如意寶珠]
요약
불교에서 이것을 가진 자의 모든 원망(願望)을 성취시켜 준다는 주옥(珠玉).
원어명 cintāmani
본문
원하는 보물이나 의복 ·음식 등을 가져다주며 병고 등을 없애 준다는 공상의 보주로서, 악을 제거하고 혼탁한 물을 맑게 하며, 재난을 없애는 공덕이 있다고도 한다. 보주⦁여의보⦁여의주라고도 한다. 법(法:진리)이나 불덕(佛德)에 비유되기도 하는데, 경전의 공덕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마갈어(摩竭魚:바다에 살며, 두 눈은 해와 같고, 입을 벌리면 어두운 골짜기와 같아서 배도 삼키고 물을 뿜어내는 것이 조수와 같다는 상상의 고기)의 머리 속에서 나왔다고도 하며, 제석천(帝釋天)이 가지고 있는 물건이 부서지면서 떨어진 것, 석가의 사리(舍利)가 변한 것이라는 등 여러 설이 있다. 여의륜관음(如意輪觀音) ·마두관음(馬頭觀音) ·지장보살(地藏菩薩) 등이 지니고 있는 것으로서 사람들의 원을 채워주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4) 제액 [題額]
요약
1. 액자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씀.
2. 비신(碑身)의 상단부나 이수에 비의 명칭을 새긴 부분.
본문
비석 제액(題額)은 대부분 전서(篆書)로 썼기 때문에 전액(篆額)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신도비의 경우 일반적으로 당대의 문장가, 즉 홍문관 대제학에게 청하는 것이 상례이다.
묘갈명은 대체로 3품직 이하의 관료를 지낸 양반층에게 사용되는 것이고, 그 이상의 품계를 지낸 이에 대해서만 신도비가 허용된다.
신도비나 묘갈은 찬문(撰文), 사자(寫字), 전액(篆額)을 위해 세 전문가(문장가와 서법가)의 손을 빌려야 한다. 이 때 청탁자에게 보내는 예물을 윤필(潤筆)이라고 한다.
비문을 청탁하고 나면 바로 돌을 사서(買石), 갈아(磨石), 바탕비(白碑)를 만들어 둔다. 그래야만 돌에 맞게 비문을 새겨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문이 마련되면 석공으로 하여금 문자를 새겨 넣고(入石), 길일을 택하여 묘 앞에는 갈석(碣石)을 세우고 묘도 동남방에는 신도비(神道碑)를 세운다(立石).
1) 이수 [螭首]
요약
용의 형체를 새겨 장식한 비석의 머릿돌.
본문
이(螭)자는 본래 뿔이 없는 용 또는 교룡(蛟龍)을 가리키는 글자이다. 그 용어와 양식은 중국에서부터 사용한 것으로, 본래는 이기(彛器)·비액(碑額)·석주(石柱)·석계(石階)·인장(印章)·종(鐘)·정(鼎) 등의 표면과 머리 부분에 용의 형체를 조각하여 장식한 것을 말한다. 이 가운데 비액의 이수가 형체나 크기로 보아 가장 대표적인 것이어서 오늘날의 일반적인 개념이 되었다.
비의 기원은 주대(周代)부터 유래한 목비(木碑)에서 찾는데, 이때는 단조로운 형태의 비신(碑身)뿐이었으며, 이수가 나타나는 것은 한대(漢代)부터이다. 한대의 비의 머리는 원형머리와 규형(圭形)으로 된 두 가지 양식이 있었는데, 특히 둥근 머리를 가진 비에서는 훈(暈)이라고 하는 것이 가장자리를 장식하는데, 이 훈에 가끔 용이나 주작(朱雀) 등을 조식하였던 것이 후세 이수의 기원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삼국시대와 남북조시대, 수대(隋代)를 거치면서 석비양식이 더욱 발전하고, 당나라 때에 와서 지금의 이수와 비신, 방부(方趺)·귀부(龜趺)를 가진 석비양식과 수법의 기본형이 등장하고, 이것이 한국에 전해져 고려시대까지 한국 석비의 기본양식이 되기도 하였다. 당나라 때에 완성된 이수의 특색은 둥근 머리의 형태에 좌우 2∼3마리의 반룡(蟠龍)들이 서로 얽힌 모습으로 나타나면서, 반룡의 머리만을 나란히 하여 석비를 물고 비신을 일제히 들어 올리는 듯한 형상으로 조각되어 있는 점이다. 이러한 당대(唐代) 석비의 양식이 통일신라시대에 수용되어 한국의 석비에서도 귀부와 이수가 갖춰지게 되었다. 통일신라시대 초기에는 당비의 이수의 특징을 그대로 갖추고 있으나, 9세기 후반기에 가면 둥근 머리형에서 관형(冠形) 또는 개형(蓋形)으로 변화되어 간다.
고려 초기까지 이러한 형식이 이어지다가 12세기 말에는 이수 없는 비신 위에 우진각 지붕형으로 된 규두형(圭頭形) 석비가 나타나고, 14세기 말에는 옥개풍(屋蓋風)의 지붕형 이수를 가진 또 다른 형식이 출현한다. 그러다 조선 초기에는 다시 당송시대의 이수를 가진 석비양식이 보이기도 하다가 15세기 말경부터는 고려 말의 옥개형 석비형식을 기본으로 하는 간략한 양식이 주조를 이룬다.
2) 귀부 [龜趺]
요약
거북 모양의 비석 받침돌.
본문
삼국시대부터 쓰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귀부 위에 비신을 세우고 비신 위에 두 마리 용으로 장식된 이수(螭首)를 씌우는 것이 보통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용의 모습 외에 해태 모습을 한 것도 있고, 사실적인 거북 모양에서 점차 변형되어 장중한 것, 패기에 넘치는 것, 우아한 것 등 형태를 달리한 것이 많다. 태종무열왕릉비(太宗武烈王陵碑)의 귀부와 이수는 완벽한 아름다움으로 높이 평가된다.
3) 여의보주 [如意寶珠]
요약
불교에서 이것을 가진 자의 모든 원망(願望)을 성취시켜 준다는 주옥(珠玉).
원어명 cintāmani
본문
원하는 보물이나 의복 ·음식 등을 가져다주며 병고 등을 없애 준다는 공상의 보주로서, 악을 제거하고 혼탁한 물을 맑게 하며, 재난을 없애는 공덕이 있다고도 한다. 보주⦁여의보⦁여의주라고도 한다. 법(法:진리)이나 불덕(佛德)에 비유되기도 하는데, 경전의 공덕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마갈어(摩竭魚:바다에 살며, 두 눈은 해와 같고, 입을 벌리면 어두운 골짜기와 같아서 배도 삼키고 물을 뿜어내는 것이 조수와 같다는 상상의 고기)의 머리 속에서 나왔다고도 하며, 제석천(帝釋天)이 가지고 있는 물건이 부서지면서 떨어진 것, 석가의 사리(舍利)가 변한 것이라는 등 여러 설이 있다. 여의륜관음(如意輪觀音) ·마두관음(馬頭觀音) ·지장보살(地藏菩薩) 등이 지니고 있는 것으로서 사람들의 원을 채워주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4) 제액 [題額]
요약
1. 액자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씀.
2. 비신(碑身)의 상단부나 이수에 비의 명칭을 새긴 부분.
본문
비석 제액(題額)은 대부분 전서(篆書)로 썼기 때문에 전액(篆額)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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