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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보 서문(戊辰譜序文)1988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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戊辰譜序文(西紀1988年)

 

우리 豊川任氏의 族譜는 1681年(肅宗 7年 辛酉) 定平府使 映에 의하여 定平 에서 처음으로 간행되어 이를 辛酉 譜라 하고 다시 補完 修正 하여 海州에서 간행한 것이 5年 후인 1686年 (肅宗 12年 丙寅)이었으니 이를 海州譜 또는 丙寅譜라 한다. 그러나 초창기의 사업이었으므로 명단이 광범위로 수합되지 못하였고, 체재 또한 제대로 정리되지 못하였음은 면할 수 없는 사정이었다.

그로부터 57年 후인 1743年에 伯派인 府院君 후손 珦과 仲派인 典書公 후손 師夏 가 다시 續刊할 것에 합의하고 伯派를 上篇, 仲派를 下篇으로 분담하여 편찬에 착수하였으나 전국에 흩어져 사는 宗 人들로부터 명단을 모으고 이를 종합 정리하는 것이 워낙 방대한 일이었으므로 이때 시작된 제3차의 간행은 여러분들의 손을 거쳐 1797年(正祖 21年 丁巳)에 이르러 비로소 출간되었으니 이를 正祖 丁巳譜 또는 丁巳譜라 한다. 두어 세대의 손을 거치고 56年이라는 장구한 세월을 지나서 완성된 이 족보는 내용이 가장 충실하였으며 체재가 잘 정리되었다.

 

그 凡例에서 정한 것을 보면 정확하고 엄정하며 史家의 筆法에 근거하여 우리 族法의 체계를 定立하였을 뿐 아니라 일반 修補家의 규범이 되기에 충분하였다.

그 일례로 범례의

제10항에 [지방 종인 것으로 옛 족보에 계제 되지 않은 자도 파계가 확실하며 다른 족보, 호적, 비문 등의 고증할 자료가 확실할 때에는 原譜에 수록하고 註로 그 사유를 밝힌다]

제11항에 [명단 중에는 옛 족보에서 자손이 없는 이름 밑에다 붙여 가지고 오는 일이 있으나 그 세대의 차서가 빠진 부분이 있거나 그 근거가 애매할 때 에는 따로 別譜에 넣는다]

제12항에 [계파가 原譜에 바로 얹을 수는 없으나 그렇다 해서 別 編으로 넘기기가 어려운 경우는 비슷한 성격의 것을 모아서 뒤에 붙이고 이를(附錄) 이라 한다]라고 한 것 등을 보아도 매우 합리적이며 공정한 처리방법임을 알 수가 있다.

더구나 통신과 교통 사정이 어려웠던 당시에 있어서 伯仲 兩派를 총괄하여 집대성한 것은 획기적인 역사적 대사업이었다. 이로부터 60년 후인 1857년(哲宗 8년 丁巳)에 다시 제4차의 족보가 간행되었다. 이해도 丁巳 년이었으므로 丁巳譜와 구별하기 위하여 哲宗 丁巳譜 또는 後 丁巳譜라 한다.

 

同譜의 跋文에 보면 [府院君과 典書公의 伯仲 兩派가 본시 족보를 함께 해 왔었으나 이번에는 宗中의 의견이 일치되지 않아 典書公派 만의 派譜로 만들 수밖에 없었다] 한 것과 같이 仲派만의 單獨 譜에 그치고 말았다.

日政 이후에 수차에 걸쳐 족보가 간행된 바 있으나 역시 兩派의 大同譜에 이르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 체재가 엄정하지 못하고 채택에 있어 고증과 근거를 밝히지 않은 것이 많아 信史로 서의 사명을 다했다 하기에는 미흡하였다.

 

1982년 4월 宗親會에서는 200년 가까운 동안 이루지 못했던 大同譜를 續刊하자는 의견이 中央 委員會에서 발의되어 總會의 議決을 거쳐 곧 會長 恒準氏 主管下에 伯仲 兩派에서 추천한 인사로 大同譜編輯委員會를 구성하고 편찬의 체재와 凡例에 대한 審議를 끝내고 중앙과 지방의 문중에 연락하여 명단을 제출케 하고 編纂部署를 갖추어 업무에 착수하였다.

1984년 5월 恒準氏에 이어 仁光 氏가 會長職을 계승하여 편찬위원과 실무부서를 改編하고 사업을 계속한 결과 전후 5년 나머지에 걸쳐 伯派 分은 이제 인쇄가 완료되어 총 6책으로 출간하기에 이르게 되었다. 내가 외람히 처음 編纂 委員長의 任務를 맡은 적이 있다 하여 會長으로부터 族譜의 머리말을 쓰라는 부탁을 받고 사양하다 못하여 이 붓을 들게 된 것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우리 족보는 우리 任氏의 700년간의 역사이다.

이 가운데에 나타난 각 가문과 명인들의 행적은 우리나라 역사의 한 축도이며 민족 문화발전의 역사와 걸음을 같이 하였다. 이 가운데에는 관료로 국정에 참여했다가 王家의 변란으로 盛衷을 함께한 가문도 있으며 국난을 당하여 나라에 목숨을 바친 烈士도 있었다. 그러나 主流를 이룬 것은 학자와 문인이었다.

비록 수 에 있어서는 大姓의 대열에 들지 못한다 할지라도 전국 각지에 끼어 살지 않는 곳이 없으며 거의 모두가 선대로부터의 世系를 보존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우리 민족문화에 기여한 氏族이었다고 자부하여도 부끄러움이 없으리라 생각된다.

 

오늘날 족보를 편찬하는 것은 宗族의 血綠的 世帶를 체계적으로 밝히므로서 상호 간의 친의를 두텁게 하려는 것이 근본 취지이며, 결코 봉건시대의 의식을 다시 살리려는 시대 역행적인 사고에서가 아니요. 사회사 자료의 한 부분으로서의 의의를 지니는 데에도 그 목적이 있었다고 할 것이다. 이로써 문화사 또는 사회사를 연구하는 학도에게 한 氏族의 系譜와 歷史를 고구 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이러므로 本譜에서 문벌을 과시하는 듯하다.

기술이나 봉건 윤리에 의한 명분을 밝히는 것 같은 것을 일체 배제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다시금 밝혀둔다.

 

本譜가 刊行되기까지 이 어려운 사업을 마무리 단계에까지 이끌어 온 會長 仁光氏 와 編輯의 勞苦를 직접 담당한 여러분께 깊은 敬意와 치하를 드린다.

 

서기 1988년 1월 일

後孫 泰東古典 硏究所 所長. 翰林大學校 敎授 昌淳 삼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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