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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국노(任國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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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천임씨 15世 죽오공 임국노(任國老

1537(중종32)년생 1604(선조37)년졸

 

자는 태경(), 뒤에 태수(태수)로 고쳤으며 호를 죽오(竹塢)라 하였다.

아버지는 통정대부(通政大夫) 양주목사(楊洲牧使) ()이요, 어머니는, 안동 권씨(安東權氏) .

어려서부터 총명 영오(穎悟)함이 보통아이와 달랐고, 7~8세에 능히 시()를 지어 사람들이 많이 전송(傳誦)하기도 하였다.

1561(명종16)25세에 생원(生員). 진사(進士) 두시 험에 합격하고, 다음해 문과(文科) 별시(別試)에 병과(竝科)급제하여 승문원(承文院)에 보직되고, 관례에 따라 봉상시 주부(奉常主簿)로 옮기고 호조(戶曹)와 병조(兵曹)의 좌랑(佐郞)을 역임하였다.1568(선조1)년에 지방으로 나가 충청도 도사(忠淸道都事)가 되었고,이둠해 중앙으로 들어와 예조(禮曺)와 형조(刑曹)의 정랑(正郞)을 역임하였다.

그 다음해 또 경기도사(京畿都事)로 나갔다가 다음해 1571(선조4)년에 다시 중앙으로 들어와 병조정랑(兵曹正郞). 성균관 직강(成均館直講)을 거쳐 1572년에는 영접도감(迎接都監) 낭관(郎官)으로 파직 당했다.

다음해에는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에서 장령(掌令)으로 승진 되었으며, 이어 한성부 서윤(漢城府庶尹). 성균관사예(成均館司藝). 내섬시 첨정(內贍僉正) 등을 역임하고, 1575(선조8)년에 다시 정언이 되었다. 이때 어머니가 여질(癘疾)에 걸려 시탕(侍湯) 할 때 공이 약을 반드시 먼저 맛보곤 하였는데 그 약이 지극히 불결하여 어머니가 따르지 않으면 간혹 한 주발까지도 다 마시고 울면서 권하기도 하여 드디어 병이 나았으나 고이 뒤이어 병석에 누어 거의 일어나지 못할 지경까지 갔다가 다행히 다시 소생하였다. 그해 어버이를 봉양하기 위해 수원부사(水原府使)를 자원해 나갔다. 그러한 겨울에 아버지가 병에 걸려 집에 와 곁에서 모시면서 간호하던 중, 대간(臺諫)이 직무를 오랫동안 비웠다고 탄핵하여 파면 되였다. 그리고곧 상을 당하여 3년 동안 여묘9廬墓)를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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